“ 콜라주 기법이 유화물감을 대신하듯이 언젠가는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때가 올 것이다. ”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이며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과 전시의 표상인 백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백남준은 한국 국적이지만 어느 지역 또는 국적, 특정 문화에 국한되지 않는 ‘유목민적’ 예술 정서를 생애 동안 작품을 통해 표방하였다. 일본 도쿄대학 미학미술사학과를 수학한 후 1956년 독일 뮌헨으로 유학을 떠나 1958년 연주자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를 작곡한 현대 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 큰 감명을 받았다. 이후 1960년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저절로 구성되는 것을 표현하는 전위 예술 흐름인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음악의 구성을 해제하고 [심플](1960), [머리를 위한 선](1961) 등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지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아티스트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어 TV와 비디오로 매체를 확장시키며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확립하고 예술에 대한 이전의 경계와 범위를 무너뜨렸다.
백남준은 “예술가는 미래를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진보하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개방적인 반면, 미디어와 인간과의 소통에 중점을 둔 반(反)테크놀로지를 강조하였다. 그는 TV의 내부 회로를 조작하여 수신 이미지를 조작하거나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였으며, 1980년 위성 기술을 이용한 생방송을 기획, 제작하여 지역의 한계를 넘어 균등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전위 예술과 대중문화를 잇는 실천적 예술의 행보를 선보였다.
미디어를 통하여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했던 백남준은 창조적인 예술의 선구자이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가장 인간적인 예술가로서, 그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한편에 예술이란 불리는 것이 있고, 다른 한편에 커뮤니케이션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가끔씩 그 둘이 그리는 곡선이 교차한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며 어쩌면 우리의 꿈일지도 모른다.”
ㅡ백남준 (1980)
b. 1932 서울, 대한민국
d. 2006 마이애미,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