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섭 : 시간의 항해, The Voyage of Time

심문섭 개인전
​시간의 항해, The Voyage of Time
2023년 3월 16일 – 2023년 6월 25일
경남도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GAM)은 경남 통영 출신의 조각가 심문섭(1943-)의 60년 예술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심문섭:시간의 항해》를 2023년 3월 17일부터 6월 25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1·2층 전관에서 개최한다.

《심문섭:시간의 항해》는 심문섭이 60여 년 전 뱃길을 따라 시작했던 오랜 예술항해 중 고향 경남에서 처음으로 닻을 내리는 대형 회고전이다. 1970년대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그의 초기 실험 작품부터 각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 드로잉 그리고 2004년부터 현재까지 몰입 중인 회화 연작에 이르기까지 약 200여 점에 달하는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집중 조명한다. 이 중에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미발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작가는 조각, 설치, 사진, 드로잉,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아우르며 장르의 카테고리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작업에 있어 일관되고 뚜렷한 방향성을 유지해왔다. 심문섭의 초기 조각 작품은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미니멀리즘(Minimalism), 일본 모노하(Mono-ha)와의 영향관계 속에서 논의되기도 하지만, 국제적 감각과 시대상을 공유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를 투영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태어나고 자란 경남 통영의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환경은 작가의 자연관에 큰 영향을 미치며 몸속 깊이 각인되어 현재까지도 작업의 원천이 되고 있다.

심문섭은 "조각가로서 조각이라는 매체 고유의 고정관념에 반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였고 이를 자신의 주요한 조형의 지표로 삼아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시 제목 '시간의 항해'는 작가의 작품에 공통으로 내재된 시간성과 장소성, 진행형의 복합적인 작업 형식을 뜻하기도 하지만, 바다를 중심에 둔 채 결코 한곳에 정박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운 흐름을 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작가의 작업 태도를 함축한다. 심문섭은 완결된 오브제의 형상이 아닌 물질의 시간성을 내포하는 과정으로서 작업을 추구하며 미지의 열린 세계를 지향해 왔다. 관람객 역시 시간 여행자가 되어 작가의 예술항해를 가로질러 그 시적 만남에 동참하길 기대한다.

전시는 1, 2층 전시장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심문섭의 '반(反)조각'을 향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작업 여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각 섹션 주제는 전체 작업을 관통하는 몇 가지 주요한 키워드를 기반으로 설정하였다. 이는 어느 한 시기의 특징에 국한되지 않고 전 작업의 궤적을 아울러 적용되는 것이기에 작품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섹션 1. 장(場)을 열다: 관계에서 제시로
작가의 첫 시리즈 "관계(1970-1980)"에서 "현전(1973-1990년대)", "목신(1982-1995)", "토상(1981-2009)"을 거쳐 "제시(2000-2007)", "반추(2002-)" 시리즈의 대표작을 선보인다. 이 중에는 2000년대 조각과 근작 회화도 포함되었다. 이를 통해 심문섭이 동시대 국제미술의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여 전통적인 형태의 조각에서 벗어나 물질, 재료, 상황적 조각을 추구하며 조각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해 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섹션 2. 자연의 감각: 무한의 질서
자연이 주는 원초적 소재인 흙(점토)으로 만든 "토상(1981-2009)" 시리즈의 다양한 변주와 회화 작품을 소개한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고 자란 심문섭에게 아름다운 통영의 바다와 자연환경은 그의 자연관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작업 전반에 투영되었다. 그는 돌, 나무, 흙과 같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재료를 사용하면서 작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여 그 물질 자체의 본성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한다. 심문섭의 작품은 원초적인 자연재료 속에 잠재해 있는 무한히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를 품고 있다.

섹션 3. 반(反)조각의 확장: 물성에서 회화까지
심문섭의 조형관이 잘 나타난 "메타포(1992-2008)", "현전(1970-1990년대)", "반추(2002-)" 시리즈의 대표작과 최근까지 몰입하고 있는 "제시-섬으로(2004-)" 회화 연작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조각은 물질의 예술이며, 세상 모든 것이 조각의 재료가 된다'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조각, 설치, 회화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2000년대 이후 심문섭의 작품에는 물, 바람, 빛과 같은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였는데, 통영의 바다를 모티브로 한 푸른색 회화 역시 '반(反)조각'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세션 4. 아카이브
작가의 작품세계에 보다 면밀히 다가설 수 있도록 작가 연보를 비롯한 다양한 기록물과 자료들, 드로잉 작품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특히 모든 전시장에서 조각과 어우러진 회화 연작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반(反)조각' 정신의 확장 개념으로써 조각과의 상관관계를 짚어보는 데 의미가 있다.

전시를 기획한 박현희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 조각의 경향을 주도했던 작가, 심문섭의 예술 행적이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반영, 전개되어왔는지를 살펴보고 그 의미와 가치를 다시 심도 있게 바라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 관계(關係)
1970년대부터 1980년까지 지속했던 시리즈이다. 심문섭은 1970년 제 1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관계77"을 처음으로 출품하여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기의 작품 재료는 캔버스, 종이, 돌, 쇠파이프, 철판, 흙 등이었는데, 작가는 이러한 물질들에 인간의 행위와 장소, 시간성이 더해져 생겨난 우연적인 상황에 주목하였다. 즉 대상을 재현하는 전통적인 조각이 아닌 상황 개념의 조각을 추구하였다. "관계"는 단순히 작가와 소재의 대치에서 머무르지 않고 조각이 놓이는 공간과 외부의 관계, 상황까지도 고려한 열린 형태의 조각이라고 볼 수 있다.

2. 현전(現前)
1974년 [제2회 앙데빵땅] 전에서 처음으로 선보여진 "현전"시리즈는 197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사이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현전'은 불교의 '선(禪)' 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가시적인 어떤 것이 눈 앞에 나타남을 의미한다. 심문섭은 작품을 통해 물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인 '물성(物性)'을 제시한다. 작가는 사물이나 재료를 문지르거나 긁고 누르고 자르는 등 일련의 충격적 행위를 가함으로써 사물이 가진 고유의 존재 양식과 더불어 그 속에 내재하고 있는 시간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3. 토상(土想)
1981년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지속했던 "토상" 시리즈는 흙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조각에서 점토는 일반적으로 어떤한 형태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사용되는 반면, "토상" 시리즈에서 점토는 본연의 특성을 드러내는 물질로써 등장하고 있다. 심문섭은 점토를 구부리거나 쌓아올리는 등 최소한의 힘을 가하여 점토의 부드럽고 유연한 물성을 강조한다. "현전" 시리즈와 함께 작가의 물성 탐구를 잘 보여주는 작업으로 원초적이고 친숙한 소재인 흙으로 제작되어 작가와 물질, 물질과 관객 사이의 더욱 자연스로운 교감을 이뤄내고 있다.

4. 목신(木神)
1982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제작되었다. 목신은 '나무의 정령(신)'이라는 뜻으로 나무의 본성을 의미한다. 작품 표면에 거칠고 투박한 끌의 흔적이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심문섭은 "목신" 시리즈 제작에 있어 나무의 표면을 패어내는 전통적인 조각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조형적 상상력을 통해 나무를 조각하되 둔중하고 거친 미감을 표면에 남겨둠으로써 나무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살려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인간과 더불어 살아온 나무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노출함으로써 한국적인 정서와 역사성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

5. 메타포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제작된 "메타포" 시리즈는 철과 나무라는 서로 다른 두 물질의 만남을 보여준다. 심문섭은 대조적인 두 물성이 충돌하고 침투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작품 속 자연의 산물인 나무와 차갑고 딱딱한 속성을 지닌 산업재료인 철의 공존은 긴장감을 자아내는 동시에 서로의 물선을 보완하여 안정감을 선사한다. 작품은 이질적 소재들의 관계 속에서 서로 교감하며 조화를 이룬다. 또한 작품의 닫히고 열린 부분들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구조를 보여줌으로써 관람객이 다층적인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6. 제시(提示)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제작되었다. 심문섭은 "제시" 시리즈에서 나무, 돌, 철과 같은 기존에 사용해왔던 재료에 광섬유, 물, 비닐, 전구 등 새로운 재료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의 관심이 유기물을 넘어 무기물까지도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야외공간에서는 장소의 문맥에 맞게 빛,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의 요소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관객 역시 그 요소들과 함께 어우러져 작품을 이루는 풍경이 된다. 작가는 물의 순환과 빛이라는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를 물질과 결합하여 생명과 에너지의 순환을 제시한다.

7. 반추(反芻)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반추'는 '재현', '되새기다'라는 뜻으로 이전의 "제시" 시리즈를 변용하여 재-제시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반추" 시리즈는 기성의 제품, 즉 레디메이드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들은 보통 의자, 탁자, 목상자, 어망, 대들보 등 실생활에 쓰이는 익숙한 물건들이다. 작가는 이 재료들을 작품에 끌어들여 경쾌하게 다시 제시한다. 즉 오브제의 쓰임과 역사, 원래의 문맥에 상상력이 더해져 재료들은 새롭게 태어난다. 이들은 예기치 않은 모순된 시간과 공간, 만남을 통해 또 다른 관계와 시간을 이어나간다.

8. 제시-섬으로(2004-)
심문섭은 2011년 "제시-섬으로(2004-)" 회화 연작 발표 이후 회화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흔희 조각과 회화를 전혀 다른 분야로 여기지만, 작가는 조각과 회화의 관계를 논함에 있어 구분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조각과 그리는 행위는 언제나 함께할 수 밖에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결국 예술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놓인다는 것이다. 그의 회화는 물성과 시간성 그리고 바다에 대한 심상을 담고 있다. 작가는 연속적인 붓질의 반복을 통해 파도가 오고 가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윤환(輪環)의 시간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글_경남도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