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의 2006~2007 미술 시장 집중 조명

세계 미술시장으로의 관점

한국의 생존 작가 가운데서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높은 가격 상승률을 보인 이우환(1936-)에 대한 국내 미술시장의 관심이 증폭 하고 있다. 소위 이우환 열풍으로 불리는 이러한 현상을 바탕으로 박수근(1914-1965), 김환기(1913-1974) 등 근대화가들 위주로 편성되어온 기존 국내 블루칩의 세대교체, 재편되는 블루칩 작가군의 리더 등과 같은 평가가 시중에 돌면서 이우환 열풍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러한 이우환 열풍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이우환의 작품 세계 및 국제 미술계에서의 활동 이력 전반을 간략히 아우르면서 이우환 시장의 성장 배경을 알아보고, 가격 급상승세를 보인 2006년과 2007년 상반기의 경매 실적을 주요 작품(유화)에 초점을 맞추어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이우환 시장의 현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읽어보고자 한다. 국내외 경매 실적은 그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네 가지 연작(점,선,바람,조응) 별로 구분하여 시간의 추이에 따라 살펴보도록 한다.

1978년작(161.9 x 130.2 cm / 100호)
소더비 뉴욕 (2007년 5월)
낙찰가 $ 1,944,000 (약18억원)

이우환 시장의 성장 배경

최근 나타나는 이우환 시장의 급성장은 2007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점에서> 연작 중 한 점이 낮은 추정가의 5배에 달하는 높은 금액 (약18억원)에 낙찰된 것이 가장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높은 낙찰가를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희소성과 작품성에 대한 평가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최근 2-3년간의 가파른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이우환의 작품 가격이 향후 상향 재조정의 여지가 있으며, 앞으로 국제 미술시장에서 그가 세계적인 스타 작가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현재 국내 미술시장에서 이우환이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그 첫째 이유는 국내 작가로서는 드물게 자신만의 탄탄한 이론을 통해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는 점이다. 이우환은 불교 선사상을 배경으로 절대 무(無)를 핵심 사상으로 확립한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의 철학을 토대로 하이데거, 메를로 퐁티 같은 서구 철학자들의 이론을 연결시키고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체계화시켜 일본 모노하의 주요 이론가이자 주요 작가로 활약한 바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서구에서의 활동에 주력하였다.

1985년 작
돌과 철판
200 x 161.8 x 41 cm (approximate size)

모노하의 이론을 보여주는 대표작 예

서구 미술계는 타 문화 출신 작가의 작품을 평가할 때, 작가가 자신의 문화에 뿌리를 두면서 국제적인 미술언어를 사용하는가를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서구 미술을 그대로 답습하는 타 문화 작가는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사물과 미술간의 경계 실험을 통해 당시 서구 미술계의 주류로 떠오른 미니멀리즘의 언어를 공유하면서도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연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함으로써 서구의 이원론과 대상적 사고를 정면 비판하고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이우환의 이론과 돌과 철판을 주재료로 하는 조각은 서구 미술계에 어필하는 바가 실로 크다고 하겠다.

두 번째, 그의 그림이 매우 독창적이라는 점이다. 이우환의 회화는 기본적으로 회화의 부정에서 출발한 자신의 모노하 이론을 번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론가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점, 선, 여백을 기본으로 하는 문인화에 뿌리를 두기에 작가 자신의 주장처럼 회화라기보다는 서체에 가깝고, 이로써 서구의 추상과는 전혀 다른 추상, 또는 정신 수련으로서의 회화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게 평가할 만 하다.

이처럼 추상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서구 미술계에 어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이우환의 탁월한 전략인 동시에 국제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라 하겠다. 또한 호흡을 중시하는 서체의 붓 기술을 석채(돌가루)와 아교를 섞은 독특한 재료로 캔버스에 적용하는 독창적인 테크닉과 극도의 절제는 얼핏 난해한 듯하면서도 단순하여 우리의 정서에 쉽게 와 닿는 점이 국내 컬렉터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물론 초기작이라는 점도 작용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점에서>와 <선에서> 연작이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한 <바람> 연작보다 높게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점에서 1976년 작 (15호)
캔버스에 석채와 아교
소더비 뉴욕 (2007년 5월)
$ 360,000 (3억 3천만원)

단적으로 말해서 최근 일고 있는 이우환 열풍은 서구 미술계에 도전하기 위한 나름의 진지한 철학적 성찰과 독창적인 작품성을 바탕으로 서구에서 통용될 만한 국제적인 스타 작가로서의 잠재성을 토대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전 작가로 선정된 것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명상적인 작품과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이론으로 그는 일본과 서구, 특히 유럽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퐁피두 미술관,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관 등 유럽의 주요 미술관을 비롯하여 뉴욕 근대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를 잘 말해준다. 여기에다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나, 뉴욕의 유명 갤러리에서 이우환의 전시를 유치하고자 추진 중이라는 소식도 국내 이우환 열풍에 한 몫 했음을 배제할 수 없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이우환 특별전' <조응>

이러한 이우환의 국제적인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국내 컬렉터들이 국내 경매는 물론 일본, 미국을 비롯한 해외 경매에서 이우환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있는 것이 최근 열풍의 가장 직접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각 연작별 주요 작품(유화)의 시간 추이에 따른 경매 기록에 초점을 맞추어 시장 현황을 파악해보도록 하자.

네 가지 연작 별 주요 작품의 시간 추이에 따른 경매 기록

1. <점에서 (From Point)> 연작

최근 사적인 거래에 나온 적이 있었던 <점에서> 연작의 수작들

79년작, 31.5 x 41 cm (6호) / 1978년작, 72.7 x 60.6 cm (20호)

이우환의 시장에서 현재 가장 가파른 가격 상승을 보이고 있는 것은 <점에서> 연작이다. 일반적으로 <점에서> 연작은 <선에서> 연작과 더불어 1973년에서 82년까지 작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연작 모두 작품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서 늘 수요가 높은 편이었으나 최근과 같은 현상은 지난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의 낙찰가 기록에서 그 주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점에서> 연작 가운데 한 점이 낮은 추정가의 5배에 달하는, 약 18억원(수수료 포함)에 낙찰되어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작품은 <점에서> 연작에서는 보기 드문 작품 사이즈 (100호)와 석채와 아교를 섞어 그리는 이우환의 전형적인 기법이 탁월하게 살아있는 작품으로서 질과 희소성 모든 면에서 상당히 빼어난 작품이었다. 일부에서는 지나친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이 낙찰 결과는 국내 경매에 직접적인 여파를 가져와 이 연작의 국내 시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점에서 1978 161.9 x 130.2 cm (100호)
소더비 뉴욕
$ 낙찰가 1,944,000

2. <선에서(From Line)> 연작

선에서 1976 64.8 x 52.7 cm (15호)
소더비 뉴욕
$ 360,000

<선에서> 연작은 존재와 소멸, 그리고 그 과정 속의 지속적인 생성을 보여주는, 이우환의 예술 컨셉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우환 연작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라고도 평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수가 워낙 적어서 시장에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2006년과 2007년 초반까지는 급격한 가격 상승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생성의 에너지와 사라짐의 느낌이 잘 어우러진 <선에서> 연작 한 점이 <점에서> 연작의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같은 경매 (뉴욕 소더비)에서 낮은 추정가의 2.5배에 달하는 금액 (약 3억 3천만원)에 낙찰되면서, <점에서> 연작과 마찬가지로 국내 시세에 직접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3. <바람(Wind)> 연작

With Wind
1987
크리스티 뉴욕
추정가 $600,000 – 800,000

<바람> 연작은 1982년 – 87년의 <동풍> 연작 및 <바람에서> 연작, 그리고 1987-91년 사이에 제작된 <바람과 함께>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연작들은 이전 연작들에 비해 구성과 필치 등이 다양하며, 이는 이전 연작들보다 작품성에 있어서 편차가 클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도 하겠다. 희소성 측면에서 볼 때에도 작품 수가 이전 연작들에 비해 많은 편이기 때문에 가격이 비교적 낮게 형성되어 있다. 이 연작 역시 다른 연작들과 마찬가지로 해외 경매를 기점으로 국내 시세에 변화가 생겼으며, 화풍, 작품 질, 사이즈 면에서 유사한 작품들을 비교할 때, 지난 1년 동안 약 100%에 달하는 낙찰가 상승률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조응(Correspondence)> 연작

<조응>은 1992년 이래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인 연작으로 <바람> 연작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완성도에 따라 가격 차의 폭이 큰 편에 속한다. 이 연작은 ‘눈 앞에 보이는 것을 감춤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이 드러나게끔‘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극도로 절제된 표현 속에 많은 것을 함축한다. 이 연작 역시 2007년 7월 경매를 기점으로 낙찰가가 급격히 상승하였는데, 이는 6월에 시작된 베니스 비엔날레의 여파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 경매의 낙찰가를 반영하여 향후 국내 경매 추정가 형성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우환 시장 전망 : 몇 개의 감을 감나무에 남겨두던 배려심이 필요하다
이우환의 시장에 있어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해석되는 것은 ‘호당 얼마'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가격 책정에 있어서 작품의 완성도를 최우선시 하기보다는 크기(호)를 중시해 온 우리 미술시장의 관행이 이우환 작품을 계기로 깨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 경매가 지나치리만큼 국내 시세에 여파를 가져온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보인다. 특히 경매 기록을 그대로 1차 시장에 적용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쿠사마 아요이
무제 (무한 그물 연작)
1959
144.2 x 186.7 cm (변형 120호)
소더비 뉴욕 2007년 5월 15일, 컨템포러리 미술 저녁 세일
낙찰가 $1,552,000 (수수료 포함)

사실 컬렉터들이 해외 경매에서 자국 출신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 자체는 작가의 국제 시장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면 아무리 작품설명이 뛰어난 작가라고 해도 자국 컬렉터들의 지지가 없으면 국제 시장이 힘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우환과 비슷한 연배의 일본 출신 작가로서 1958년 이래 오랫동안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서구 미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쌓은 쿠사마 야요이(1929-)를 들 수 있다. 그녀는 회화는 물론 퍼포먼스, 필름, 조각 등 다양한 장르에서 눈부시게 활약하면서 앤디 워홀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작가이다. 또한 아시아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뉴욕 근대미술관(1988년)에서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작품 세계를 인정 받고 있지만, 해외 경매에서의 최고 낙찰가는 $1,522,000 (약 14억 4천만원)으로 이우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컬렉터들의 자국 출신 작가의 해외 시장 지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모든 일이 너무 과하면 좋지 못한 법이다. 국내 미술시장의 붐으로 인해 일부 컬렉터들의 경우, 이우환의 작품 세계에 대한 진정한 관심보다는 투자 가치 쪽으로만 관심이 편중된 듯 하고, 최근 들어 국내 경매는 차치하고 해외 경매 및 아트 페어에서도 내국인들이 작품을 독점하다시피 구매하는 현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우환이라는 작가의 국제화에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 미술관들로부터 이우환 작품에 관심이 있어도 소장할 수가 없다는 말이 종종 들려오고 있다. 경매에 입찰해도 미술관의 한정된 예산으로는 내국인들간의 지나친 경쟁과 그에 따른 낙찰가 상승폭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작품 구매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볼 때, 투자 가치를 따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먼저 이우환의 작품을 이해하고자 진심 어린 관심을 가져주고, 그의 작품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나아가 주요 작품 일부를 해외 미술관 및 컬렉터들이 소장할 수 있도록 숨통을 트여주기 위해 때로는 합심하여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작가가 그토록 공들여 다져온 국제적인 작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배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이것이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의 시장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는 길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감을 딸 때, 새들을 위해서 감나무에 몇 개의 감은 꼭 남겨두었던 옛 어른들의 배려가 투자가 목적이든 수집이 목적이든 간에 최첨단 기술의 21세기에 발맞추어 새로운 미술시장을 만들어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

글_정윤아 <미술시장의 유혹 : 미술시장에서 본 현대미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