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획은 서(書)와 화(畫)에 대한 설명적 문자이자, 서화 표현의 시작이자, 마지막 기법이다. ”
김종원은 서(書)를 기반으로 글자와 그림을 초월한 작가 만의 추상 언어를 창조해 내며 초월적 세계를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글씨와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며 붓과 먹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을 만들어낸다. 서(書)와 화(畫)의 관계성을 탐구해온 김종원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나뉘지 않은 상태인 서화동체(書畫同體) 개념을 필두로 구상과 비구상을 넘어선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김종원의 회화의 원형은 서(書)로부터 시작된다. 점과 획으로부터 환원된 김종원의 필획(스트로크, stroke)에는 기운생동의 기운 그 자체이다. 김종원의 화면은 글씨와 그림이 모두 녹아있는 필묵의 향연으로 글씨, 형태, 소리를 하나로 통합하며 겹겹이 쌓여 물결치고 있다. 음운이 형태로 치환되어 문자, 그림, 소리가 삼위일체 된 그의 예술 세계는 전통과 현대,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래 하나인 실존의 우주를 향해 나아간다. 그림과 문자가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작가는 강력한 붓질을 통해 작가 스스로 우주의 기운과 일맥상통하는 정신의 율동을 보이고자 한다. 이렇게 그어진 수행과 명상적 필획들은 태초의 우주처럼 율동성을 띠며 보는 이의 시각과 청각을 비롯한 다각적인 감각을 일으킨다.
김종원은 텍스트와 이미지, 역사와 현대, 동서양의 미술이 분리되기 이전의 모든 감각이 융합된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는 평가받는다. 초월적인 지각으로부터 집요하게 천착한 그의 미감과 조형 세계는 모든 문자와 이미지의 해체로써, 추상적인 이미지로 대표되는 서구 추상주의와 단색화로 표현되는 현대미술과는 다른 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치유적 유희와도 같은 그의 작업은 전통과 문화가 이분화된 현대 사회에서 해방구를 보여주는 듯하다.
b.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