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과 물질이 서로 만나서 얽히는 사이에 생기는 시적인 양상"
투명한 푸름이 있고, 거친 포말과 함께 검은 푸름이 있으며, 하늘처럼 아득하지만 은은한 푸름이 있는가 하면, 해와 함께 물들어가는 붉음도 있다. 나열할 수 없는 색, 나열할 수 없는 분위기가 하늘에 닿아 있는 바다에 있다. 그의 회화에는 그것의 표면, 그것의 색, 그것의 분위기, 그것의 조화로움, 그것의 순간성, 그것의 영원성, 그것의 결이 다만 있을 뿐이다.
밤을 감싸는 바다의 대기가 품고 있는 검고 쌀쌀한 어두움, 아침을 감싸는 대기가 품고 있는 안개와 같은 허여멀건함, 낮의 열기로 데워진 바다의 아스라한 여유로움, 다른 시간 속에서, 대기의 열기 안에서, 다른 습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바다를 기억한다. 다른 바다의 기억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 안에 감싸지는 웅장함 안에 있게 된다. 바다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무심한 풍경, 어떤 풍경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회상한다.
심문섭의 회화 속에서 물결의 마티에르는 '우리의 존재를 뚫고 들어와 우리를 정화시키는 순수한 물성'으로 다가오고 '모든 것이 만물을 낳고 지키려는 자각 속에서 무한한 생각이 움트는 방식'으로 삶에 녹아든다.
물결의 마티에르 안에 시간이 흐르고, 삶이 흐르고, 끝없이 반복되는 부서짐과 새로운 탄생 안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숭고한 질서를 만나게 된다. 영원과 순간의 결이 미묘한 바다의 색과 마티에르로 표출된다. 물의 텍스처, 물의 표면 그것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으며,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분명 우리에게 오고 있지만, 가고 있으며, 색이 있지만, 하나의 색이 아닌 대기와 시간에 따라 가변하는 색의 향연이기도 하다. 익히 보아온 표면이지만 또한, 그것은 우리가 보지 않았던 표면의 시적 표현이다. 거칠고, 부드러운, 어둡고, 밝은, 차갑고, 미지근한, 바다의 표면이자, 삶의 내면을 거칠고 섬세한 붓터치로 자연이 그러하듯이 담담하게, 풍부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그것은 노래다. 음악이고 혼이고 샘이다. / 영원한 조화를 알려주고 만물을 미(美)로써 맺어주는 비너스의 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