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5

지구촌. 2000년대 참으로 자주 등장하던 단어인데 어느샌가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인지 이젠 예전처럼 많이 쓰는 단어는 아니다. 이는 단어에 익숙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개념 또한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지구촌에 살고 있을까? 기술이 발달하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는 우리는 당장에라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나누고 즐길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코로나 팬더믹이다.

우리는 이전에도 종종 전염병과 맞서 싸워왔지만 최근의 코로나 팬더믹과는 달랐다.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이와 같은 전염병은 사실 동물들에게서 좀 더 자주 마주쳐왔다. 전염병을 막기 위해 수많은 가축들을 폐사시켜 확산을 막고 치료제를 찾기 위해 연구했으며 감염 예방을 위한 조치도 지속해왔다. 하지만 계속해서 또 다른 바이러스가 변이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영원히 전염병을 예방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수천 세대를 거치며 우리는 알을 잘 낳는 닭과 육질이 좋은 돼지를 사육해왔다. 이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동물의 유전자를 선택해 온 과정의 연속이었다. 현대 과학에서 유전자를 복제하려는 것과 또 다른 의미의 복제 닭, 복제 돼지로써 우린 이미 유전적 다양성이 결여된 개체를 사육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린 하나의 병에도 위협적인 전파를 감내해야 하기에 모든 가축을 폐기해야 했고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를 줄 알았던 우리가 이역만리 떨어진 외국인 과도 코로나 하나에 집단으로 감염될 수 있음에 폐기처분 대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시적인 관계의 폐기를 요했다.

동물과 인간이 얼마나 다른지, 우린 의식할 필요도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너무도 달랐던 우리가 다르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이 가축들에게만 유전적 다양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진정한 백신은 다양성인 것이다.

나아가 우린 유전적 다양성만이 아니라 사고의 다양성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다양성이란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어느 집단에서나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은 기존의 것들이 변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자칫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는 생태학적으로 순환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자 다양성으로 다가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백신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을까?

서구의 산업화를 뒤늦게 따라붙으며 그 대열에 합류한 한국은 여러 혼란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성장해왔다. 짧은 시간 우리가 이뤄낸 산업적 성취는 뜻깊었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우리의 기술력도 처음엔 의아했지만 이젠 “역시, 당연하다”는 반응이 먼저다. 반면 문화에선 그렇지 못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를 석권하고 세계 각지에서 따라 부르고 춤을 추는데도 우린 의아했고 이후 BTS와 오징어게임이 연이어 트렌드를 이끌어감에도 아직 우린 어딘가 썩 시원하게 자랑스럽진 못하다. 이는 BTS와 오징어게임이 ‘컨텐츠’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해석되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컨텐츠라는 카테고리에선 워낙 다양한 이야기와 컨셉, 문화가 녹아있기 마련인데, 만약 한국적인 것을 키워드로 삼지 않은 컨텐츠가 한국을 대표하게 될 때, 해외에서 컨텐츠에 대한 관심을 배경이 되는 국가로 확장해갈 때 당당히 이것이 한국의 대표적인 것이라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에겐 좀 더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다른 카테고리를 살펴보면 스마트폰, 반도체 시장 등에서 한국의 기술력은 세계에서 인정 받는다. 근데 이 기술이라는 카테고리는 상대적으로 국가적 특색의 반영이 덜하다. 하지만 컨텐츠 시장은 사용하는 언어나 촬영하는 지역적 특징들이 반영되기 때문에 국가적 특색을 배경으로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해외에서 인정받고 유명해진 우리의 컨텐츠들이 관심을 받으면 늘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 말하지만 우리가 먼저 이것을 보고 해외에서 인정받기 전에 한국적인 것이 뭘까라는 질문에 BTS와 오징어게임을 떠올리긴 쉽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해외에서 인정받고 유명해진 컨텐츠를 통해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귀납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연역적으로 우리의 것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의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아 다양성을 키워드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뒤, 그것을 BTS와 오징어게임으로 확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수많은 한국에서 파생된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나갈 것임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17-18세기, 시누아즈리를 시작으로 자포니즘으로 이어진 서구권의 동양에 대한 관심은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태동했다. 이때 서양이 외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소비하였기도 하지만 당연히 중국과 일본 또한 이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공급에 열을 가했다. 무조건적인 자신의 문화만을 알리고 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변화하기도, 발전하기도 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고도의 자기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계를 향해 문을 닫고 아무런 문화적 교류를 하지 못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태도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하는 때에 이르렀다. 우리는 태동 하는 꼬렐리즘Corée-lism을 바라보고 있는 첫 세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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