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ssandro Mendini : Redesign & Revival

2008년 9월 6일 – 2008년 10월 31일
갤러리인터아트

디자인은 사물의 정신에 대한 것이며 사물과 인간의 정신을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1]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사물에 부여하고자 하는 정신이라는 것은 인간이 사물이라는 대상과 교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불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사물의 정신화를 위해 사용하는 시각적 언어가 바로 장식이며, 리디자인(Redesign)이다. 이 리디자인을 통해 구태의연한 사물이 새롭게 생기를 띄게 되고, 새로운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됨으로서, 사물의 새로운 본질이 재생(Revival)하게 되어, 무미건조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자극을 주는 감성적인 디자인 매커니즘을 획득하게 된다.

기능주의에 반하는 장식을 디자인에 적용함으로써 그는 모더니즘 디자인이 지닌 차갑고 이성적인 디자인과 구분되는 따스하고 풍부한 감정과 애정이 실린 감성적인 디자인을 구축하게 된다. 단순하고 기능적인 형태에 절제된 색상으로 된 디자인이 그의 장식으로 인해 새로운 시각적 유토피아(Visual Utopia)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디자인 제품 중 하나인 와인오프너 ‘안나(Anna)’가 그러하다. ‘안나’는 인간의 동작으로부터 나온 디자인이다. 발레리나가 긴 팔을 오므리며 올리고 내리는 우아한 동작과 와인오프너의 열고 닫는 형상을 매칭하여, 발레리나를 향해 갖는 이미지적 환상을 와인오프너에 부여한 것이나, 이 와인오프너를 자신의 ‘안나 질리’에게서 ‘안나’라는 이름을 가져옴으로서 ‘멘디니’와 ‘안나’라는 특정 인물의 스토리를 삽입하는 것이 그러하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은 인간적인 형태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그 인간적인 형태는 동심이 지닌 순수한 시절을 연상시키며 과거와 현재의 자신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매개로서 작용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토템이 바로 안나에게서 세련된 방식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Anna G, corkcrew red, Alessi

또한, 기존의 디자인 가구에 장식(리디자인)을 하여 의미를 부여한 디자인이 있다. Thonet Chair, Wassily Chair, Kandissi sofa가 그러하다.

Kandissi Sofa, 1978, Studio Alchimia, Milan

그리고 고전적인 앤틱 가구 형태에 선명하고 밝고 화사한 색과 패턴을 가미한 Byblos Casa의 가구들이 그 범주에 속한다. 여기서 리디자인(장식)을 통해 과거가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사물에 대한 예술적 접근이 어떻게 사물에 예술적 감응으로 재현되는지를 보이는 멘디니의 디자인으로는 ‘The Poltrona di Proust(Proust’s armchair)’가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문학작품에서 시작한 프루스트 의자는 폴 시냑(Paul Signac)의 점묘주의가 혼합되어 포스트 모더니즘식으로 완성된다.

Groninger Museum, Groningen, architec tural model in wood, 150x50x60(H) cm / Groninger Museum

프루스트 의자가 멘디니의 디자인에서 차지하는 예술적 영역은 넓다. 그의 명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실상 멘디니의 디자인 방식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부터 그의 여정을 돌이켜보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기억 –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대한 기억이 아니고 지난날 내가 산 적이 있는 곳, 또는 가본 적이 있는 곳 같은 두 세 곳의 기억 –이 천상의 구원처럼 내게 내려와,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허무로부터 나를 건져준다.’라는 대목이 있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언젠가는 시간에 의해 소멸되어 버린다는 냉혹한 크로노스(cronos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억은 자신(정체성)을 알게 해주는 단서이며, 삶의 가치와 의미를 회복시켜주는 맥락이 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이 소멸해 가지만, 기억의 회상을 통해, ‘자아’가 ‘자기동일성’을 확보하고, ‘잃어버린 시간(크노로스, 흘러가는 시간)’은 ‘되찾은 시간(카이로스,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는 소설 속에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입천장에 닿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가 멘디니의 의자에서는 색점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멘디니의 프루스트 의자에서 색점은 색을 병치하여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효과만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무한함 속에서 살아가는 각자에게 삶의 의미를 회상할 수 있는 기억의 조각으로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사소한 감각을 깨우는 세밀한 소재의 언어(조각)들의 병치가 모자이크처럼 통일된 이미지와 의미를 만들듯이, 비록 이 소소한 기억들이 발생한 시간과 공간이 이질적이지만, 그것을 넘어 초자연적인 시공간감을 자아내듯이, 프루스트 의자에서 색점들의 병치도 역시 그런 초자연적 시공간감을 시각화하고 있다. 멘디니 특유의 시각적 유토피아는 그런 방식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진정 무언가를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한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디자인은 새로운 것, 새로운 형태를 향해 있지 않다. 그는 이미 있는 형태, 앤틱 의자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정신을 넣어 시냑의 점묘로 리디자인(장식)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사물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교감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의 동화적 시각적 유토피아는 건축에서 더 확고하게 드러난다. 그의 드로잉과 건축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가 발을 우리 사는 세상에 딛고 있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그의 장식, 그의 리디자인은 형태와 색에 끊임 없이 순수한 판타지가 흐르게 함으로서 아름다운 것이 내면화되고 사적인 영역으로 침투하게 하는 동화적이고 시적인 디자인 언어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던, 순수한 시절에 가졌을 법한 솔직하고 저돌적이며, 상상에 가까운 이미지가 그의 디자인에서 재발견되어지기 때문이다.

장식은 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시대를 반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그렇게 기능주의 중심으로만 디자인이 흘러간다면 인간의 삶 속에 디자인이라는 요소가 냉랭한 것으로만 비춰질 것이다.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디자인적 가치는 바로 그 따스한 열기에 있다. 체온이 갖는 온기만큼만 따스한 색감과 친근한 형태의 디자인으로 그는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동화적 영감을 주는 것이다. 순수한 시절의 자신을 만날 수 있도록, 사물과 대화하기를 그는 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