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추상표현주의를 정립한 색의 마술사, 전광영

세계 미술시장으로의 관점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김환기의 ‘우주’가 150억 원으로 한국 미술작품 경매 사상 최고가로 낙찰된 가운데 한국 미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우리는 한국미술을 세계 미술사적 관점에서는 물론, 세계 미술 시장을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미술이 본격적으로 세계 미술 시장에 진출한 1900년대 후반부터 지난 20여 년간 세계의 유수 미술 시장 –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의 해외 경매 – 에서 꾸준히 작품이 거래되어 온 대표적인 한국의 생존 작가는 이우환 작가와 전광영 작가이다. 2007년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전광영의 작품이 1억 7천만 원(100호), 2008년 필립스 런던에서 이우환의 작품이 1억 4천만 원(150호)에 낙찰된 바와 같이, 두 작가의 출발선은 비슷하였다.

그 이후, 이우환은 유수 미술관 전시 등을 통하여 미술계에서 국제적 입지를 다짐과 동시에 체계적인 매니지먼트를 통해 2015년을 기점으로 세계 미술 시장에서 꾸준한 가격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전광영의 경우 시장에서의 전문 매니지먼트의 미숙함으로 인해 충분한 작품성과 fan base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입지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수묵화의 전통과 동양적 ‘물파'에 근간을 두고 이룩한 동양적 추상표현주의와 날염(捺染)기법으로 표현되는 아름다운 색의 세계는 세계 미술계로부터 꾸준히 주목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1960년대 아직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상실된 문화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당시 대부분의 한국 작가들은 프랑스로, 그리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러나 전광영은 김환기가 정착한 곳, 미국으로의 유학을 선택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듯 보였지만 인종차별, 빈부격차,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소용돌이 속 정신적 카오스를 겪고 있던 미국에서, 그는 곧 한국의 도제식 미술 수업에서 벗어나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로움에 빠져들었다. 상상력이나 표현법의 구속이 없는 서양의 추상표현주의적 형식과 전통 수묵화로부터 이어오는 동양적 표현 방식 – 캔버스, 종이, 그리고 물감들이 지닌 고유의 물성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스스로 표현되는 방식 – 을 통해 전통을 바탕으로 한 동양적 추상표현주의를 정립하였으며, 다양한 색의 물감을 캔버스와 종이에 자연스럽게 날염하는 화법을 통해 서양의 추상표현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그만의 미술 언어를 탄생시켰다.

90년대 중반에 들어 그는 어린 시절 자주 접했던 한약방의 약재들이 스며든 한지의 풍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고서를 접어 다채로운 색으로 날염하고 이를 캔버스에 빼곡히 배치하는 ‘집합’ 시리즈로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통과 시간의 축적, 응축된 역사와 인간사를 집합적으로 화면에 표현한 방식에 세계가 열광하였으며, 2017년에는 2015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단색화’ 전시를 주최했던 국제적 문화 후원 단체인 보고시앙 재단(Boghossian Foundation)의 초청으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인전을, 2019년에는 뉴욕 5대 미술관 중 하나인 브루클린 뮤지엄에 초청되어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80년대 作 , ONT-059> / <2021년 作, Aggregation 21-JA005>

이제 우리는 세계 현대 미술사에서 우리의 전통 기법을 현대화하여 세계의 공감을 얻은 두 가지 유형 - 관념을 서사적(narrative)으로 시각화한 이우환과, 관념을 서정적(lyrical)으로 표현한 전광영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세계의 미술시장은 동양적 추상표현주의를 정립한 전광영의 작품을 통해 생생하고 오묘한 빛과 색의 아름다움에 열광하리라 확신한다. 세계 미술시장에서의 꾸준한 수요는 희소성과 작품성에 대한 평가에 기반하여 세계적 작가로서의 잠재성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문화에 깊은 뿌리를 두면서 국제적으로 설득력 있는 미술 언어를 사용하는가를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전광영은 김환기의 다음 세대로서, 이우환과 함께 한국미술의 맥락을 잇는 대표적 작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