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시간은 영원의 움직이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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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Untitled / 1996 / Still Image on canvas / 52x70.5cm


​시간은 영원의 움직이는 이미지다.

2008년 3월 19일 - 2008년 4월
갤러리 인터아트

 

갤러리 인터아트는 시간은 영원의 움직이는 이미지다.[1]라는 전시 타이틀로 공간과 조우하는 이우환과 시간과 조우하는 남준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그들 작품의 공간성과 시간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화가가 추상적 공간을 이해할 때, 추상적 시간을 이해한다고 했던 백남준의 스틸 이미지를 추상적 시간이 반영된 회화라고 하면, 평면의 여백을 공간적 개념으로 확장시킨 이우환의 조응은 추상적 공간이 반영된 회화이다

 

움직이는 비디오 영상의 정지된 화면인 스틸 이미지는 시간적인 예술인 음악을 했던 백남준에게 있어 추상적 시간이 회화로 전이된 평면 작품이다. 즉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비디오 화면은 음악성을 느낄 수 있는 움직이는 회화이며 이것이 정지되었을 때, 시간은 더 이상 뒤로도 앞으로도 가지 않는다. 그러나 비디오 영상 속에 그 스틸 이미지는 과거였으며, 현재이며, 미래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그 이미지가 시간 속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 스틸 이미지 속에 잉그리뜨 버그만이나 험프리 보가트가 있다. 단순히 과거의 아이콘으로서가 아니라, 차용된 이미지가 그래픽적으로 조작되어 아이콘의 위상이 감소된 채, 매체가 지닌 인위적 본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스틸 이미지는 지극히 백남준식이며, 그가 이해한 시간의 이미지의 한 조각인 것이다.

변화와 반복 그리고 정지라는 음악적 시간의 속성이 그의 스틸 이미지가 표현된 속성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비록 그의 스틸 이미지가 가벼워 보이지만, 가볍지 않은 것은 시간성이 존재하는 움직이는 시간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여백은 비워진 공간이 아니라 꽉 차 있는 공간이다. 그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려진 부분 보다 미미한 존재감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여백은 그림 속에서 한정된 공간감으로 혹은 무한한 공간감으로도 표현될 수 있으며, 구체적이고 지시적인 내용을 담은 그림 속의 여백은 예컨대 인물화에서의 여백은 지극히 제한적인 공간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이우환의 여백처럼 여백이 추상적인 획과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추상적인 획과 여백은 서로를 당기기도 하고 밀치기도 하면서 균형을 이룬다. 그러면서도 여백과 강하게 조응하는 획은 화폭 속에 머물지 않고 공간 속에서 울림이 있는 획으로 되살아 난다. 이때 획을 둘러싼 여백은 화폭을 벗어나 그림이 걸려 있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획은 강하고 힘있게 공간 속에 존재하고, 이 공간 속에서 획이 지닌 붓의 터치감이 세밀하게 살아 남음으로써 여운을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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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환 Silently 4 / 2006 / 110x92cm

 추상적 획과 관계된 여백은 획과 함께 평면에 머물지 않고, 공간 속으로 확장되어, 무한한 순간 또는 공간, 영원 속에 멈춘 듯 움직이고 끝난 듯 다시 숨결을 이어가는 시적인 공간감을 불러 일으키는 움직이는 이미지가 된다.

 

시간과 공간의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어우러짐으로써 이 전시는 우리로 하여금 영원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 움직이는 이미지의 편린을 응시하도록 할 것이다.


[1] Time is the moving image of eternity. Plato 플라톤